한 손님이 매장에 들어와서 한참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이거 어떻게 읽어요? 고사머 기어? 고싸머 기어?” 그는 이 브랜드 이름이 생소했던 모양이다. 나도 고싸머기어Gossamer Gear를 처음 봤을 때 같은 반응이었다. ‘이름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지을 수 있을까?’ 그래서 당시에 영어 사전을 뒤적였던 기억이 있다. 발음기호에 따르면 고싸머의 정확한 발음은 ‘가서머’다. ‘거미줄’ 혹은 ‘고운’, ‘섬세한’이라는 뜻을 가졌다. 발음은 전혀 곱거나 섬세하지 않은데 말이지.생소한 이름만큼 고싸머기어는 아직 국내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
매년 6월이면 각지에서 트레일러닝 대회가 열린다(재작년과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덥기도 하고 춥기도 한, 날씨가 극과극을 이루는 이때 대회를 열면 선수 모두 만족할 거라고 각 대회 운영자들이 똑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 6월에만 대회가 여러 개 열린다. 올해는 더 심한 것 같다. 코로나가 풀려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는 분위기. 대회가 몰려서 불편한 건 없다. 달리기 대회는 1년에 딱 한 번 나가기로 했으니까. 작년에는 자체적으로 ‘불수사도북’을 했고, 올해는 거제 100K에 등록했다(나는 50K 종목에 출전). 힘들다고
6월은 고마운 달이다. 6월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봄이면서 한편으로는 여름인 이 계절은 본격적인 더위와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더 가열차게 놀라고 누군가가 준 보너스다. 축제의 달인 5월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사람들은 보통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괜찮아, 아직 6월이 남았잖아’라고.그래서인지 우리 가게는 6월이 특히 바쁘다. 급하게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급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거 있어요?” “아! 이거 급하게 필요한데!”이런 식으로 애원한다. 나는 그들의 사정을 안다. 각
가끔, 이 세상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사건들에 관해 상상한다. 예를 들면, 나를 정말로 싫어했던 옛날 직장 동료와 단 둘이 한 달 동안 자동차를 타고 미국 횡단을 한다든가. 포장마차에서 혼자 조개탕에 소주 한 병을 다 마신다든가(나는 술을 진짜 못 마신다). 등산을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산에 간다면 어떨까?도 그런 상상 중 하나였다. 마지막 항목은 일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전화기를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형, 이번 주 저랑 산에 갈래요?”“그래 좋아! 언제? 어디?”“어, 어. 그게 말이죠. 저기.”예상 못한
‘21세기 HEAVY DUTY’는 월간의 필자가 가상의 아웃도어 편집숍 주인이라는 설정으로 진행합니다. 수록된 제품 소개 기사는 편집숍 주인이 튼튼한Heavy Duty 아웃도어 장비를 손님에게 추천하는 콘셉트로 작성됐으며 업체로부터 제품을 협찬받거나 비용 지원을 받은바 없음을 밝혀둡니다.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가? 캠핑용품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스토브부터 시작해 쿡세트, 3계절용 침낭 등 어떤 사람은 여기서 살림살이 세트를 챙겨갔다. 캠핑용품을 찾았던 수많은 손님 중 아주 ‘공격적인’ 분이 있었다. 이 사람은 가게 문을
요즘 아침 우리 집 주변은 꽤 시끄럽다. 새들이 모여서 떠들기 때문이다. 수십 마리가 모여 페스티벌을 진행하는데, 그 소리가 우리 집 10층의 작은방 창을 뚫을 정도다. 얘네들 때문에 쉬는 날 늦잠을 못 잔다. “야! 그만 떠들어라, 잠 좀 자자”라고 소리칠 수도 없고, 1층까지 내려가 새들을 쫓아내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잠이 완전히 달아날 것 같아 그냥 참아왔다. 저 많은 새들이 추운 겨울엔 대체 어디에 숨어 있던 걸까?어느 주말 늦은 아침, 쓰레기를 버리려고 1층에 내려갔다가 드디어 놈들과 만났다. 그런데 나는 차마
‘21세기 HEAVY DUTY’는 월간의 필자가 가상의 아웃도어 편집숍 주인이라는 설정으로 진행합니다. 수록된 제품 소개 기사는 편집숍 주인이 튼튼한Heavy Duty 아웃도어 장비를 추천하는 콘셉트로 작성됐으며 업체로부터 제품을 협찬 받거나 비용 지원을 받은바 없음을 밝혀둡니다.“지도 케이스 있나요?”라고 물어본 희귀한 손님이 얼마 전 가게를 찾았다. 요즘 지도 케이스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시대에 등산지도는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으로 보기 어렵고, 종이로 된 등산지도를 가지고 산행하는 사람은 국보급 인물이라 해도 될
전철(지하철)을 사람이라고 치면 이 사람은 꽤 고지식하다. 약속을 칼같이 지킨다. 다른 길로 가지 않는다. 오로지 같은 길만 왔다 갔다 한다. 좀 느리면서 재미가 없다. 세상이 전철 같은 사람으로 넘쳐난다면 무미건조하겠지만 그런대로 평온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도시의 전철은 꽤 믿음직하다. 이상하고 괴상한 도시인들 틈에서 그 고지식함은 분명 보석처럼 빛난다. 전철을 만든 수많은 기술자들과 지금의 교통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노력한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갑자기 왜 전철 찬양일까? 그 편리함을 실로 오랜만에 다시 깨달았을
“혹시 산에 갈 때 입는 내복도 파나요? 유니클로 히트텍 같은 거 말고요. 이상하게 생긴 내복이 있던데.”어느 날 어떤 남자 손님이 가게 문을 빼꼼 열더니 고개만 내민 채 물어봤다. 이미 여러 가게에 들렀다가 온 모양으로 우리 가게도 그 ‘특별한 내복’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렇다면 문을 닫고 바로 다른 가게를 찾아갈 요량인 듯했다. 그가 찾는 것이 보통 내복이 아니란 걸 단숨에 파악한 나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아, 그거요? 망사로 된, 이상하게 생긴 내복 말씀하시는 거죠? 있어요. 들어와서 보세요!”그러면서 나는 그의 앞에
얼마 전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산에서 길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맸다. 사실 이것은 비유다. 당시 나는 처리해야 할 회사 업무(이것을 답변해야 할 문제가 적힌 서류로 본다면 쌓인 종이 뭉치가 사무실을 출발해 20km 정도 늘어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매표소 직원이 갑자기 떠오르는데, 그 직원이 하는 일보다 내가 했던 일이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웠다고 확신한다) 때문에 매일 새벽에 퇴근했다.아주 괴로웠던 그때를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할 때마다 나는 ‘깜깜한 곳에서 한참 헤맸다’고 하소연했다. 이 방법이 그다
고양이는 무적이다. 강아지도 그렇다. 둘을 이길 수 있는 건 지구상에 거의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귀여운 것 앞에선 누구나 무장해제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나의 아내는 나를 볼 때 대체로 가자미 눈을 한다. 아니면 게슴츠레 뜬 상태거나. 길을 가다가 고양이나 강아지를 발견한 아내의 눈은 반대다. 반짝반짝 하트 모양이면서 동시에 길바닥에 주저앉아 어떻게든 그들과 가까워지려고 난리를 떤다. “어머, 어떡해! 귀여워!!” 이러면서. 귀여운 건 정말 막강한 힘을 가졌다. ‘귀여움’이라는 단어는 또 한없이 자비롭다. 강호동이나
‘내 돈 내 산 아웃도어’는 월간 의 필자가 가상의 아웃도어 편집숍 주인이라는 설정으로 진행합니다. 수록된 제품 소개 기사는 편집숍 주인이 해당 장비를 직접 써 보고 추천하는 콘셉트로 작성됐으며 업체로부터 제품을 협찬받거나 비용 지원을 받은바 없음을 밝혀둡니다.“저기, 라스포르티바 솔루션 컴프 있나요?”“아, 그거 지금 가게에 없는데요, 내일이나 모레 들어올 거예요. 예약해 놓을까요?”솔루션 컴프Solution Comp는 이탈리아 아웃도어 브랜드 라스포르티바La-sportiva에서 만든 암벽화 이름이다. 이 회사의 암벽화가 요
뒷산 오르막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능선 쪽을 슬쩍 봤다.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했다. ‘나도 어서 저쪽에 끼어 시원한 경치 바라보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순간 못된 상상을 했다.‘능선에 있는 어떤 사람 한 명과 오르막에서 땀 뻘뻘 흘리고 있는 지금 나의 위치를 바꾸는 기술이 있다면 참으로 유용하겠다!’ 아무리 상상이지만 영문도 모른 채 나와 위치가 바뀐 상대방은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그래서 생각을 순화해서 더 발전시켰다. 순간이동 장치를 만들어 산꼭대기까지 힘들이지 않고 휙 올라갈 수 있게 말이다. 상상이 여기에
‘내 돈 내 산 아웃도어’는 월간의 필자가 가상의 아웃도어 편집숍 주인이라는 설정으로 진행합니다. 수록된 제품 소개 기사는 편집숍 주인이 해당 장비를 직접 써 보고 추천하는 콘셉트로 작성됐으며 업체로부터 제품을 협찬 받거나 비용 지원을 받은바 없음을 밝혀둡니다.우리 가게 입구는 정신 없게 꾸며졌다. 문이 제대로 안 열릴 정도로 뭔가가 문앞을 가득 막고 있다. ‘뭔가’는 바로 작은 가방이다. 작은 가방이 문 앞에 주렁주렁 걸려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런 가방을 크로스백Cross Bag 혹은 그냥 색Sack, 아니면 앞가방이라고
“어서 오세요. 뭐가 필요하세요?” “케일 배낭 있나요?” “아, 그거 방금 다른 손님이 사갔어요!”우리 가게에서 잘 나가는 제품 중 하나가 케일의 배낭들이다. 들여놓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손님들이 귀신같이 찾아온다. 손님들도 케일 제품이 좋다는 걸 안다. 그리고 케일이 외국 브랜드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면 대다수가 놀란다. 그렇다. 케일은 이색적이다.케일CAYL, Climb As You Love은 지금처럼 젊은 등산 마니아들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 2011년에 만들어졌다. 그들의 첫 시작을 나는
나는 국수에 환장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면으로 만든 모든 음식에 열광한다.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요리 한 가지만 먹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면 요리를 선택할 것이고, 다른 면 말고 라면만, 김치 없이 오로지 라면만 먹으라고 해도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면을 지독히 사랑한 죗값으로 나는 얼마 전 주말, 차로 왕복 8시간 걸려 오서산에 다녀왔다. 고속도로에서 긴 시간 차에 갇힌 끔찍한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한 건 바로 ‘오서산 국수’다. 오서산 국수는 일반 국수집(식당)이 아니라 면을 뽑는 제면소다.올해 초, 장모님이 시장에서 ‘오서산
‘내 돈 내 산 아웃도어’는 월간 의 필자가 가상의 아웃도어 편집숍 주인이라는 설정으로 진행합니다. 수록된 제품 소개 기사는 편집숍 주인이 해당 장비를 직접 써 보고 추천하는 콘셉트로 작성됐으며, 업체로부터 제품을 협찬 받거나 비용 지원을 받은바 없음을 밝혀둡니다.2010년쯤 ‘도메스틱 브랜드’라는 말이 패션계 쪽에서 유행했다. 도메스틱Domestic의 뜻을 직역하면 ‘국내의’, ‘집안의’다. 패션계에서는 이 말을 ‘국내 브랜드’를 지칭할 때 사용했다. 그러니까 도메스틱 브랜드라고 하면 ‘한국에서 자체 생산한 제품’을 만드는
2021년, 멸종 위기에 처한 단어가 있다. 바로 ‘약수터’다. 얼마 전 나는 약수터라는 단어가 지금 내 주변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걸 알았다. “약수터에 가자”거나 “약수터에서 만나자”거나 “약수터 가서 물 좀 떠와라”거나 “약수터 갔다 올게”라는 말을 지난 몇 년간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나도 얼마 동안 약수터를 지칭하거나 목적어로 사용한 적이 없다. 이러다가 약수터라는 단어와 공간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 예감이 스쳤다. 그것이 딱히 슬프거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진 않았지만 그대로 잊히기엔 아깝다는 아쉬움에 약수터에
‘내 돈 내 산 아웃도어’는 월간의 필자가 가상의 아웃도어 편집숍 주인이라는 설정으로 진행합니다. 수록된 제품 소개 기사는 편집숍 주인이 해당 장비를 직접 써 보고 추천하는 콘셉트로 작성됐으며, 업체로부터 제품을 협찬받거나 비용 지원을 받은바 없음을 밝혀둡니다.이번에는 나만 알고 쓰기가 굉장히 아까운 제품을 소개한다. 우리 가게에 널린 게 그런 제품인데 특별히 신경 써서 내놓는 이유는 이 제품은 인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인기 없는 제품은 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면서 따지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여기에 인기 없는
아내가 “우리 늙으면 어떡하지? 많이 심심할 것 같은데. 게다가 만약에 둘 중 하나가 먼저 세상을 뜨면 남은 한 사람은 대체 뭘 하면서 살까?” 물었다. 몇 년 전에 이 얘기를 했다면 분명 ‘피식’하면서 답할 생각조차 안 했을 텐데 이날은 좀 달랐다. 아내가 꽤 진지하게 물었고, 그제야 또 나는 내 나이가 중년에 가깝다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장인·장모님이 생각나면서 살짝 슬퍼지려는 찰나,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서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참고로 우리는 자녀가 없고 계획이 없다.) “매일 산에 가면 되지. 산